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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JLPT

JLPT N1 163점 합격 후기 (공부팁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목에도 적혀있듯이 이건 시험합격 후기이긴하지만

이 글을 읽음으로써 JLPT 준비에 대한 팁을 받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준비에 대한 정보를 받고 싶어서 들어오셨다면 유감입니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에 아주 익숙한 오타쿠라면...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합격후기를 빙자한 내 일본어공부 연대기(?)를 써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7462CNWWwdQ

일본밴드지만 영어가사가 훨씬 많은 엘르가든. 그냥 내가 좋아함 

 

우리집안엔 오타쿠가 많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온갖 만화, 애니메이션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일본드라마는 언내추럴 하나밖에 안봤음)

 

초등학생 때는 형제의 영향으로 내 세대에는 모르는 게 당연한 동방신기 일본노래를 들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귀가 트인 시기'는 초등학교 때였을 거다.

 

중3때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본방송을 일본생중계시간에 맞춰서 보기도 했다.

자막이 없어도 60%은 알아들었던 것 같다.

읽고 쓸 수 있는 건 히라가나뿐이지만 간단한 문법들은 어느정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일본팬이 쓴 소설을 번역한 글을 접하게 됐다.

그건 아주 신세계였고, 글쓴이는 친절하게도 파파고 웹사이트 번역기가 쓸만하다는 것도 알려줬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일본사이트의 소설들을 번역기를 돌려서 읽기 시작했다.

당시의 번역기 성능은 당연히 지금보다 못해서, 처음엔 이게 뭐야?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이름같은 고유명사가 정말..골때리게 번역되는데

파파고어플은 번역된 문장을 터치하면 원문이 나와서 문장을 하나씩 터치해가면서 

대충 이렇게 생긴 글자가 얘의 이름인가보다.하고 읽었다.

 

이렇게 글을 좀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번역되는 규칙을 받아들이게 됐다.

뭔소리냐면...

A라는 문장의 의미는 B인데, 번역기가 C라고 번역을 하면

C를 보고 아 이거 B라는 뜻이구만?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C조차 뭔 소리야? 싶을 때는 그 한 문장이나 단어만 따로 복사를 하고 걔만 다른 번역기에 돌려봤다.

일부만 번역기에 넣어봤을 때 의미가 맞게 나오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진짜 지극정성임...

 

암튼 저걸 한 1년하니까 가타카나랑 자주 나오는 한자 몇 개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됐다.

(가타카나를 몇 글자 읽을 수 있게 되고나서

에반게리온이나 나의 히어로아카데미아 같은 애니메이션 로고를 볼 때마다

이게 그거구만.하다보니 다 외워진 듯함)

 

 

번역기소설 읽기는 딱 1년 정도 했었고, 그 뒤로는 그냥..애니메이션이나 보고 살았다.

(애니메이션 만화 일본노래는 걍 내 인생이랑 한 세트임)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했었는데 공부를 거의 안해서

토쇼칸인지 토우쇼칸 인지 이런 문제 틀려서 2등급 받고 살았었다.

 

고2 때 친구가 맨날 야자하기는 싫으니 힐링용으로 일본어회화 보충수업 듣자길래 같이 들었었다.

우추무브응데하는 동사활용 배우다가 끝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이거 다시 공부 안해서 지금도 그냥 대충 감으로 맞추고 사는 중임

 

대학생이 되고 교양으로 일본어수업을 들었다.팀플도 없고 고등학교 제2외국어랑 비슷한 수준이라 학점따기 좋으니까.

그런데 문득 이렇게 애매하게 만화로 일본어 배웠어요.하는 상태에 머무르지 말고 아예 자격증을 따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숙제를 내주면 성실히 해가지만 독학은 미루고 미루다 안 할 사람이기 때문에 학원을 찾아봤다.

얼레.

우리집이랑 2분 거리에 일본어 회화학원이 있었다.

이때가 6월 중순이었고 저 겨울에 JLPT N2 딸 수 있을까요?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1:1 회화위주의 학원이라 회화 20분+나머지는 JLPT 한권으로 끝내기 푸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거 너무 밍숭맹숭한 거 아냐..?싶었지만 일단 오케이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빨리 시작하는 게 이득이므로.

 

쌤이 일본어를 어느정도 하냐고 물으시는데 히라가나, 가타카나는 다 알고 일상적인 한자 아주 몇 개만 알아요.라 하니

감이 안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더니 일본어로 학교는 어디고, 전공은 뭐고, 평소엔 무얼하냐 이런 질문들을 하시기에

한국어로 대답을 하니 듣기는 다 되시는데요?라고 하셨었음

그리고 질문에 일본어로도 한번 대답해보라고 하셨는데 이때 내가 일본어 프리토킹이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 스스로도 어???이게 되네???나 쫌 실력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느낌이었음

 

다음 수업까지 JLPT N4 모의고사 2개 풀어오는 게 첫 숙제였던 것 같다.

쉬웠고, 그 다음부터는 JLPT 한 권으로 끝내기 N3를 시작했다.

매주 두 번 수업에 가면 쌤이랑 20분 정도 일본어프리토킹을 했다.

쌤도 오타쿠여서...둘이 별의 별 말을 다 하다가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어..규칙이 일본어로 뭐였죠?키소쿠요. 하면 내가 다시 키소쿠가 블라블라...이런 식으로 굴러갔음

 

회화가 끝나면 한권으로 끝내기에서 오늘은 문법 풀어볼까요. 하고 풀다가 모르는 거 나오면 예문 살펴보고,

쌤이 준비해온 일본 뉴스 듣고 단어 빈칸 채우고 이런 걸 했었다.

숙제 분량은 따로 정해진 거 없고 그냥..모든 유형 한 페이지씩 푸는 느낌으로 했던 것 같다.

 

쌤이 자기는 단어만 달달 외우는 게 너무 싫어서 문장 통으로 외우는 걸 좋아했다고 하셔서

나도 냅다 문제를 풀어보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그 문장을 소리내서 읽고, 쓰는 걸 반복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

어떻게든 공부하는 양을 줄이려고 했던 듯함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네이버단어장에 추가하고 대중교통에서 봐야지 ㅎ~했지만?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슬덩은 슬램덩크 원서보다가 나온 모르는 단어들

 

문법은 경어, 겸양어, 접해본 적 없는 문법 몇 빼고는 어려운 게 없었고 N3책을 한 달 만에 끝냈었다.

취미라 그런가 일본어공부는 그냥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번역기 돌려서 소설읽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아는 게 더 많아졌으니 번역기는 가끔 나오는 모르는 단어 따로 복사해서 번역하기 귀찮으니 켜놓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애초에 엄청 어려운 단어가 나오는 걸 보는 게 아니라 가능했을 거다. 신문기사였다면 못 그랬을 것임.

글의 뉘앙스같은 것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재밌어서 진짜 하루에 길게는 4시간씩도 읽었었다.

(저 당시의 내가 지금보다 일본어를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함)

 

사실 N2 책을 풀면서도 모르는 한자가 나오는 것 외에는 별로 어렵지 않아서 학원을 11월 초에 관뒀다.

쌤이 좀 더 빡세게 해서 N1을 도전해봤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그러게요.

내 생각에 이때 나는 N1.5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N2보기엔 좀 아깝고 N1 보기엔 시간이 좀 촉박한 상태.

다들 N2랑 N1 사이의 갭이 크다고 해서 겁먹었던 것도 있다.

 

암튼 혼자서 깨작깨작 N2 한권으로 끝내기를 다 풀고 시험을 봤다.

 

시험 며칠 전에 부록 모의고사를 풀어봤는데 청해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멘붕이 왔었다.

그래서 아니ㅜㅜ 다른 오타쿠들은 청해가 제일 쉽다는데 나는 왜?라는 생각을 했었음.

시험을 위한 청해를 따로 준비하진 않았고 애니메이션 보고 노래나 들었다.

그냥..살았다는 뜻이다.

 

 

 

 

 

시험시간이 많이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 40분??

독해는 좀 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운좋게 다 맞았고 청해는 풀면서도 다 맞을 거라 확신했었다.

모의고사 청해가 어려워서 걱정했는데 시험이 훨씬 쉽더라.

언어지식은 아...단어 더 열심히 외울걸. 하는 정도였음

 

 

 

복학을 했다.

졸업작품 하면서 N1 한권으로 끝내기 하루에 한 페이지씩만 풀면 완전 넉넉하겠는데?하고

기세등등하게 기숙사에 책을 들고 갔지만....그럴 기력이 없었다.

슬램덩크 원서도 야무지게 읽어야지!!!하고 가져갔지만 5권까지밖에 안보고 고대로 다시 가져옴.ㅋ

 

tmi 한글로 된 만화책 한 권 읽는 건 3-40분 정도 걸리는데 원서는 2시간씩 걸리더라...

여기도 바보들만 나와서 ㅋㅋㅋ 모르는 단어는 한 권에 20개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아무래도 외국어다보니 오래 걸리는 듯

 

다시 돌아와서..

6월초에 졸작이 끝났는데도 공부할 맘이 안들어서 언어지식만 절반쯤 풀고 나머지는 거의 손도 안댔다.

 

그렇지만 N2랑 문법의 난이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 청해도 중간은 할 테니

언어지식에서 과락하지만 앉으면 합격컷이 꽤 낮으니까 떨어질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안한 것도 있는 듯 ㅎ

 

고득점까지는 기대하지 말고 가볍게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언어지식에서 모르는 문제가 7개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청해는 N2보다 어려워졌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성적표가 날라온 걸 보니 백분율이 96.8%이었다.

 

원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N2를 합격했을 때도 나는 이제 영어보다 제2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는데..이젠 빼도박도 못한다.

영어공부는 해야지 해야지..하고 미루는 중이다.

시험이 매일 있고 환불규정도 빡세지 않으니 마음이 자꾸 훌훌 날아간다.

 

다 떠나서 지금보다 작년 겨울의 내가 더 많은 한자를 읽을 수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인 듯하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언어실력은 별개라는 걸 제대로 느끼고 있다.

일본어로 일기쓰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생각해보니 N2, N1 모두 시험을 보기 전에 친구랑 도쿄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N2 이전엔 공부를 많이 한 상태라 아주 자신만만했고 실제로도 말이 잘통해서 너무 좋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회원가입을 하면 요금이 더 저렴해지는데 왜 비회원으로 하냐고 혹시...핸드폰이 없으세요?라는 말에

아 관광객이라서요. 하니까 직원이 당황하던 게 생각난다.

 

N1 보기 직전에 갈 때는

친구들한테 아...나 작년만큼 한자 못읽는다~ 반 년 넘게 회화도 안해서 잘안될지도 몰라~라고 했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역시나 좋았다.

오코노미야끼집에서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듣고

옆테이블에서 난노하나시오시테룬다로(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라는 말에...

대답해줄까말까 하다가 npc가 갑자기 말걸면 놀랄 테니 참았던 건 좀 후회가 된다.

현지인이랑 대화해볼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다.

 

급마무리를 해보자면 내가 꾸준히 오타쿠의 삶을 살아서 공부할 양이 적었기 때문에 할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 재미없는 문법들을 다 책으로 보고 암기하려고 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영어권 작품들을 이만큼 봤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건.